나가요이야기


새벽 이슬, 그리고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길

작성자 정보

  • 에스엠도우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새벽 이슬, 그리고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길

​새벽 4시 반, 도시의 밤은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들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자 끝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지고 거리의 불빛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가게 문을 나선다. 발밑으로 차가운 새벽 이슬이 밟히고, 밤새 지친 몸을 감싸는 새벽 공기는 뼈를 시리게 파고든다.
​가게를 나서기 전, 거울 속 내 모습은 밤새 웃고 이야기하며 연기했던 '그 여자'의 잔상이 남아있다. 짙은 화장 아래 감춰진 피로, 굽 높은 구두에 익숙해진 발은 이미 감각이 무뎌진 지 오래다. 수많은 낯선 시선과 의미 없는 대화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다가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허무함에 홀로 견뎌야 했다.
​거리로 나오면, 취객들의 고성방가나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도시가 숨을 고르는 듯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도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마치 방금까지 화려한 조명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배우가 무대 뒤로 퇴장한 후의 적막감과 같다고 할까.
​택시를 잡기 위해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밤새도록 웃고, 농담하고, 어쩌면 진심 아닌 진심을 주고받았던 그 시간들이 꿈처럼 아득해진다. 손에 쥐어진 돈뭉치만이 그 모든 것이 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 돈은 곧 나의 생활을 지탱하고, 언젠가 이 밤의 세계를 벗어나게 해 줄 희망이기도 하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새벽을 깨우는 환경미화원들이 길거리를 청소하고, 신문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그들은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고, 나는 이제 막 하루를 끝낸 사람이다. 같은 도시, 같은 새벽이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면, 고요하고 어두운 공간이 나를 맞이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짙은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할 때,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거울 속 민낯은 밤새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하고 고요한 나의 모습이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밤새 들었던 낯선 목소리들과 알 수 없는 농담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이내 피로가 밀려오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다음 날 저녁, 다시 화장을 하고 가게로 향하기 전까지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존재한다.
​새벽 이슬은 그렇게 매일 밤의 흔적을 씻어내고, 나에게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고단하지만 익숙해진 이 퇴근길은, 나에게는 삶의 또 다른 이름이자, 씁쓸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아침을 맞이하는 길이다.
​이 새벽 이슬을 얼마나 더 맞이해야, 나는 진정으로 밝은 아침 햇살 속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오늘도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맴돈다.

관련자료

댓글 1

이소룡님의 댓글

  • 이소룡
  • 작성일
이차핫플레이스를 방문하여 주신 모든분들께서는 건강하시고 행복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공지사항


이차 (핫플레이스) 최신글


이차 (핫플레이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