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본질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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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룡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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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본질 두 번째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관계의 필요성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자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https://www.youtube.com/@삶의지혜TV-r1p 영상은 유튜브에서...
하지만 관계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자유와 책임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라고 말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유가 어떻게 선고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달았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어떤 관계를 맺을지, 누구와 함께할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그리고 그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피할 수 없는 책임. 그것이 바로 인간 존재의 무게다.
지난여름, 오랜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그의 거짓말에 동조해달라는 것이었다.
작은 일이었고, 누구도 다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겼다. 밤새도록 고민했다.
내 선택이 옳았을까. 하지만 사르트르의 말처럼, 선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거절도 선택이고, 동의도 선택이다. 우리는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이 짧은 문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명제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
자신을 안다는 것을 자기만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것을 타인을 무시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카페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가 기억난다. 한 젊은이가 말했다.
"나는 나답게 살 거야. 남들이 뭐라든 상관없어." 언뜻 들으면 멋진 말 같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를 들으니 불편했다.
부모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친구와의 신뢰를 저버리면서도, 그것을 자기다움이라 정당화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기 인식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만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 무지,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일상. 모든 것이 나로 시작하고 나로 끝난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내는 나는 진정한 나인가.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기 인식은 자기 과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를 깨닫는 것,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그의 말은 바로 이 겸손함을 의미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타인을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라고 했다.
이 말은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얼마나 자주 타인을 이용하는가.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내 소셜미디어를 채우기 위해. 타인은 내 삶의 배경이 되고, 내 성공의 도구가 되고, 내 자랑의 소재가 된다.
직장에서 만난 후배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친절하게 대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지 않고, 내 경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존엄성을 인정하려면, 먼저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기 인식은 바로 이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친구 안에서 자신의 최고의 적을 가져야 한다.
그를 반박할 때 그에게 가장 가까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정과는 다르다.
요즘 사람들은 종종 친구란 나를 무조건 지지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내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람. 하지만 니체는 다른 것을 말한다.
진정한 친구는 나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나와 대립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나의 오만함을 꺾어주고, 나의 무지를 일깨워 주는 사람.
대학 시절,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할 때 주저 없이 말했다.
때로는 밤새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왜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지 서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가 나에게 진실했기 때문에, 나를 진정으로 존중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그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보다, 나의 성장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나 자신을 알아갔다.
한나 아렌트는 "용서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미래를 열 수 있다"라고 했다.
관계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특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철하고, 내 방식대로 행동하고, 내 감정에만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다.
그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며 관계를 끝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것인가.
몇 년 전, 가장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그 상처는 오래갔다. 밤마다 그 일을 되새기며 분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나 역시 그 관계에서 완벽하지 않았다.
나만 생각하고, 내 입장만 고집하고, 상대방의 고통을 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아렌트의 말처럼, 용서는 상대방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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