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가르쳐 준 것들 - 해운대에서 만난 철학(이차핫플레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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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룡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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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가르쳐 준 것들" - 해운대에서 만난 철학
부산의 자랑, 해운대. 이곳은 1.5km에 달하는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 국내 최고의 해변입니다.
사계절 내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곳에는 마린시티의 야경, 신선한 해산물, 그리고 동백섬의 산책로까지 즐길 거리가 가득합니다.
특히 매년 새해 첫날이면 수만 명이 찾아와 일출을 맞이하는 명소이기도 하죠.
하지만 해운대의 진정한 매력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에만 있지 않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에 서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는 삶의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습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매 순간 물은 흐르고 변하기 때문이죠.
해운대의 파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발끝을 적시는 파도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유일무이한 순간입니다.
파도의 철학 - 변화와 영원 사이
파도를 보십시오.
끊임없이 밀려왔다 물러갑니다. 하지만 바다 자체는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요?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진자운동에 비유했습니다.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진자처럼, 우리는 욕망과 무료함 사이를 반복한다고 했죠.
하지만 해운대의 파도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밀려왔다 물러가는 것, 그것이 곧 리듬입니다.
삶의 리듬이죠.
때로는 높은 파도처럼 격렬하게, 때로는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하게.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파도는 결코 바다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삶이라는 큰 바다 안에서 우리만의 파도를 만들어갈 뿐입니다.
모래알의 지혜 - 개체와 전체
발밑의 모래를 한 움큼 쥐어보세요.
수억 개의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각각의 모래알은 저마다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것들이죠. 시간이라는 거대한 조각가가 빚어낸 작품들입니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 이론을 통해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각각의 개체는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고 했죠. 해운대의 백사장이 바로 그러합니다.
수많은 모래알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해변을 만들어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는 각자 하나의 모래알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존재가 모여 인류라는 거대한 백사장을 만들어냅니다.
나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백사장에서 단 하나의 모래알이라도 빠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완전한 해운대가 아닙니다.
수평선의 의미 - 한계와 가능성
해운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그 경계는 묘하게도 늘 우리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습니다.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수평선은 여전히 저 멀리 있습니다.
칸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현상계 너머의 물자체를 알 수 없다고 했죠. 수평선이 바로 그러한 한계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수평선이 있기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도달할 수 없기에 영원히 항해할 수 있죠. 만약 수평선이 없다면, 만약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지루할까요?
니체는 말했습니다.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는 그 여정 자체가 의미입니다.
해운대에서 우리는 그것을 배웁니다. 끝없는 가능성,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해변의 사람들 - 타자와의 공존
해운대 해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인들, 가족들, 혼자 온 사람들, 관광객들.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을 찾습니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지만, 레비나스는 다르게 말했습니다.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윤리의 시작이라고 했죠. 해운대에서 우리는 수많은 타인과 마주합니다.
옆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를 봅니다.
파도가 밀려와 성을 무너뜨릴 것을 알면서도 아이는 열심히 쌓습니다. 카뮈가 말한 시시포스가 바로 저 아이가 아닐까요?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쌓는 것, 그 부조리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아이의 웃음소리가 답을 줍니다.
무너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쌓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니까요.
해변을 산책하는 노부부를 봅니다.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그들의 모습에서 하이데거가 말한 공동존재를 봅니다.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으로써 비로소 완전해지는 존재. 해운대는 그런 공존의 공간입니다.
일출과 일몰 - 시작과 끝의 의미
해운대는 일출로 유명합니다.
새해 첫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러 이곳을 찾습니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 그것은 새로운 시작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아침의 일출이 있다면 저녁의 일몰도 있습니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 어떤 이는 슬퍼하고 어떤 이는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
노자는 말했습니다.
끝은 곧 시작이다라고. 태양이 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밤이라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밤이 있기에 다시 아침이 찾아옵니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죠.
해운대의 일몰을 보며 우리는 그것을 느낍니다. 끝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합니다.
이 아름다운 석양을 영원히 볼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 - 순환하는 시간
여름의 해운대는 뜨겁고 활기찹니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죠.
하지만 겨울의 해운대는 고요하고 쓸쓸합니다. 같은 장소이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불교에서는 무상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죠.
해운대의 계절 변화는 바로 그 무상을 보여줍니다.
화려했던 여름은 가고 쓸쓸한 겨울이 옵니다. 하지만 그 겨울이 있기에 다시 봄이 찾아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라고 가르쳤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라고 했죠. 해운대는 계절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여름이 오면 여름을, 겨울이 오면 겨울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좋을 때만 받아들이려 하지 말고, 힘든 시기도 인생의 한 계절로 받아들이는 것.
도시와 자연의 경계 - 문명과 자연
해운대의 독특함은 도시와 바다가 공존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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